미국 경제를 진단하는 학계와 월스트리트의 언어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수년간 경제 상황을 규정해 온 전통적인 ‘K자형(양극화)’ 진단이 힘을 잃고, 최근 ‘C자형(수렴)’과 ‘E자형(고착화)’이라는 새로운 알파벳(Economy Shape)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경제학자, 기업 최고경영자(CEO),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오늘의 경제 성격이 정확히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해석을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1. K자형(Economy Shape) 공식론의 퇴색과 ‘알파벳 수프’의 등장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르(Joel Mokyr)가 지적했듯, 현재 경제계는 일종의 ‘알파벳 수프’ 혼란 속에 빠져 있다. 과거 역사적으로 주요 경기 침체기 이후 ‘V자형’, ‘L자형’, ‘W자형’ 등 알파벳을 차용해 경기 회복의 궤적을 설명하는 일은 흔했지만, 경기 순환의 정중앙에서 이처럼 다양한 글자가 수년째 회자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바이드 스트라테스의 수석 경제학자 돈 리스밀러(Don Rissmiller)는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구조적 부의 불평등에 대한 대중의 높아진 경계심’을 꼽았다. 고물가와 금리 인상의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단순히 경기가 좋아지거나 나빠진다는 이분법을 넘어 계층별 수급 행태가 제각각 쪼개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2. ‘C자형’의 대두: 격차의 축소인가, 일시적 착시인가?
최근 경제 논쟁에 가장 큰 불을 지핀 것은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이다. 그는 최근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 인터뷰를 통해 “K자형 경제는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며, 저소득층이 임금 상승과 정부의 세제 혜택(초과 근무 및 팁 비과세 정책 등)에 힘입어 지위를 회복하는 ‘C자형(Convergence, 수렴)’ 경제로 접어들었다고 단언했다.
기업 현장에서도 이러한 징후를 포착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힐튼 월드와이드(Hilton Worldwide)의 크리스토퍼 나세타(Christopher Nassetta) CEO는 중산층 및 상중산층의 소비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최대 6% 수준의 성장세로 돌아섰다며, “중산층이 다시 지갑을 열고 소비에 동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JP모건의 전 수석 경제학자인 앤서니 찬(Anthony Chan)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고유가 상황이 저소득층의 소득 개선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소득층일수록 가처분 소득 중 에너지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유가 상승은 곧바로 실질 구매력 저하로 직결된다는 논리다.
3. 여전히 건재한 K자형 현실과 소비자 심리의 추락
실제로 미시간대학교가 발표한 8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1% 급락하며 최저점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저·중소득층 응답자들이 물가 타격을 가장 크게 입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K자형 양극화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 소비재 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의 진단도 엇갈린다. 콜게이트-팔모놀레의 셰인 그랜트 임원은 K자형 경제 구도가 미국 내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평가했고, 로우스(Lowe’s)와 콘스텔레이션 브랜즈(Constellation Brands)의 경영진 역시 소비 계층 간의 단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최근 신용카드 부채 연구에 따르면, 총 잔액이 1조 2,600억 달러에 육박한다는 사실 역시 수많은 가계가 여전히 ‘월급으로 겨우 버티는 삶’을 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인플레이션 압박과 실물 경제의 불안이 겹치는 시기 글로벌 자금과 투자자들이 실물 가치 방어를 위해 어떤 자산으로 대피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KJ FINANCE FLASH가 지난 8월 25일자로 발행한 [고금리 시대에 금(Gold)·비트코인(Bitcoin) 동반 질주…$4,700 금값과 $80,000 비트코인의 공통점] 기사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4. 제3의 길, ‘E자형’으로의 진화 가능성
여기에 더해, 저소득층, 중산층 및 고소득층이 서로 좁혀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채 각자의 궤도에서 평행선을 그리며 적응해 나간다는 ‘E자형(E-shaped)’ 가설도 대두되고 있다.
FTI 컨설팅의 마이클 아이젠밴드는 계층별 뚜렷한 소비 패턴의 격차를 묘사하는 데는 E자형이 훨씬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네이비 페더럴 신용조합의 헤더 롱 수석 경제학자 역시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이 수렴하고 있다는 주장은 ‘억지스러운 해석’에 가깝다며, 중산층이 아슬아슬하게 현상을 유지하는 모습을 반영하는 E자형이 더 정확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솜니그룹 인터내셔널 등 일부 기업의 CEO들은 “K자형은 알았어도 E자형은 생소하다”며 여전히 현장 체감과 학계의 개념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시사했다.
시사점 및 전망
오늘날 경제학계와 시장을 뒤흔드는 알파벳 논쟁은 단순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다가오는 11월의 중간선거와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민생 경제의 실상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다. 정부와 정책 당국은 하방 경직성을 벗어난 수렴(C자형)에 주목하며 낙관론을 펼치고 있으나, 가계 부채와 체감 물가 압박에 시달리는 시장 참여자들과 기업들은 여전히 양극화(K자형) 혹은 고착화(E자형)의 그늘 속에서 정교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초소형 개미투자자의 생각
왜 우리나라 경제도 아닌 미국 경제의 유형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 진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결코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며,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드립니다.
첫째, 높은 수출 의존도와 글로벌 공급망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는 대외 교역 비중이 매우 높은 수출 주도형 국가여서, 미국 소비자의 지갑 사정과 소매 판매 동향(K·C·E자형 양극화 및 수렴 여부)이 곧바로 국내 대기업 및 협력업체들의 실적으로 반영됩니다.
둘째, 통화정책과 환율이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결정과 통화 정책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방향과 원·달러 환율에 지배적인 파장을 일으키며, 이는 국내 증시와 개인 투자자들의 자산 가치변동과도 직결됩니다.
셋째, 글로벌 자금 흐름을 읽는 중요한 선행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와 미국 학계에서 논의되는 경기 국면(알파벳 수프 현상 등)은 글로벌 투자 자금의 이동 방향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국내 증시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에게 시장의 체질 변화를 미리 읽어,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앞으로의 전개 과정을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
